카테고리 : 나름 진지한 이야기

포르쉐의 승리에 기뻐만 할 수는 없는 사정

포르쉐는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지만 얼마전에는 금융에서 큰 돈을 벌어 이야기가 됐었습니다. 헷지펀드를 크게 벗겨 먹으며 엄청난 수익을 올렸거든요. 멋지지 않습니까? ^^

포르쉐는 지난 수년간 폴크스바겐(VW)의 지분을 꾸준히 늘려나갔습니다. 덕분에 폴크스바겐의 주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수준보다 높았고, 자동차 산업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 시장에서 헷지펀드의 눈에 띄게 됐습니다.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주식을 매입하여 보유하고 있다가 주가가 올라갔을 때 판매하여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서(대주) 바로 팝니다. 그리고 주가가 떨어진 후 빌린 것과 동수의 주식을 구입해서 갚으면 주가가 떨어진만큼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헷지펀드들은 폴크스바겐의 주식을 빌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주가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죠. 그런데 포르쉐가 폴크스바겐의 주식을 더 사겠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폴크스바겐이 이에 대한 엄청난 양의 파생상품 계약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자, 헷지펀드는 당황하게 됩니다. 빌린 주식을 다시 사서 갚아야 할 시점이 다가오는데, 살 수 있는 주식이 시장에 얼마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헷지펀드들은 얼마 안되는 폴크스바겐 주식 매물을 사들이게 되고 200유로쯤 하던 주가는 1000유로까지 올라갑니다. 그덕에 폴크스바겐의 시가총액은 잠시동안이었지만 엑손모바일을 제치고 세계최대가 됩니다. 폴크스바겐은 주가가 한창 올랐을 때 가지고 있던 지분을 일부 팔아서 엄청난 수익을 올립니다. 헷지펀드가 크게 털린 덕분이죠. 

The Economist에 10월 29일 실린 기사 Sqeezing the accelerator - Volkswagen's turbocharged shares cause misery for hedge funds에 달린 독자 comment를 보면 대체로 "헷지펀드 쌤통. 그 놈들은 당해도 싸"라는 분위기가 대세였습니다.

The Economist는 그 다음날 조금 더 다듬어서 Squeezy money - How Porsche fleeced hedge funds and roiled the world’s financial markets라는 기사를 실었는데, 이 글의 끝에 헷지펀드가 당한 것 외에도 피해가 더 있다는 내용을 더했습니다. 이 일로 당시 이미 혼란스러웠던 금융시장에 고통을 더했고, 독일 금융 시장의 평판이 크게 나빠져(VW주식은 독일 주식 시장에서 거래됐습니다. 헷지펀드가 리스크가 큰 투자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다른 펀드들도 독일 주식 시장에서는 크게 당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하여 투자에 소극적이 되겠죠)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오늘(1월 8일)자 이데일리의 억만장자의 자살과 폭스바겐 공매도라는 기사를 보면, "헷지펀드를 혼내준 멋진 자동차 회사 포르쉐"의 유탄을 맞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의 퇴직 후 연금 펀드가 헷지펀드에 투자했고, 헷지펀드가 포르쉐에게 혼나서 그 사람의 연금이 줄어들었을 수도 있는 것이잖아요.

세상에 마냥 신나는 일은 잘 없나봅니다.

by A-Typical | 2009/01/08 23:30 | 나름 진지한 이야기 | 트랙백 | 덧글(5)

어쨌거나 좋은 매니저가 되기 힘든 이유

어느 나라, 어느 직장에서나 직장인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75%는 자기 직속 상사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주위 직장인들과 이야기해 보면 자기 매니저가 매니저 역할을 잘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자기 매니저뿐 아니라 다른 매니저들도 그리 잘 하는 것 같지 않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업무 평가는 대충하지, 업무 지시를 할 때 뭘 하라는 건지 모르게 지시를 하지, 직원들의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점검하는 일은 자기 일이 아닌 걸로 알고 있지, 업무 분장은 왜 그렇게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 팀의 비전이나 미션은 커녕 다음 달 계획도 없는 것 같지...

여러분이 오늘 갑자기 매니저로 승진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어제까지 하던 일과 매니저 일이 어떻게 다른지, 매니저로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누가 알려줄까요? 차상급 매니저가 뭘 해야하는지 자세히 알려주거나, 매니저가 되면 바로 매니저 교육을 보내주는 좋은 환경이라면 좀 낫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는 스스로 알아내야 할겁니다. 뭘 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면, 그걸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직원들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알고 실천하게 되는 것은, 직원들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한다고 알게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직원들의 장기 커리어 플랜을 함께 고민하고 매년 발전계획을 수립한 후 발전 정도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깨닫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커리어 플랜을 짜고 발전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체득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좋은 매니저 아래서 큰 사람은 좋은 매니저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한다는 것을 보고 익힙니다. 나쁜 매니저 아래서 큰 사람은, 저렇게 하지 말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래서 뭘 해야 하는지는 모릅니다. 매니저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게 잘 하는 것인지 본 적이 있어야 배우지." 말단 직원은 자기 바로 윗 사람 한 사람의 기대만 만족시키면 되는데, 매니저는 데리고 있는 직원 수만큼의 서로 다른 기대를 만족시켜야합니다. (성격 더러운 클라이언트 한명을 상대하는 것과, 그냥 그런 클라이언트 여럿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 중 어느쪽이 쉽던가요? ^^) 서로 다른 기대와 요구 사항을 가진 그 직원들, 대부분의 경우 뭘 기대하는지 매니저에게 알리지 않습니다.

신입사원은 뭘 해야 하는지 자세한 지시를 받고 사수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만 입사 후 얼마 동안 밥값을 못해도 다들 이해해 줍니다. 매니저는 뭘 해야하는지 대게 스스로 알아내야 하고, 아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지만, 처음부터 매니저 역할을 잘하지 못하면 아래 사람들에게 바로 욕을 먹기 시작합니다. 남들이 욕하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스스로 그 일이 잘 안된다는 걸, 그 일을 하면 힘들고 불편하다는 걸 느낍니다. 쓸만한 회사에서라면, 평직원일 때 제법 일을 잘하던 사람이 매니저로 승진하는 경우가 많겠지요. 스스로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해보면 힘들고 불편할 때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잘 하는 일을 계속 하는 겁니다. 매니저가 됐지만 그 전 평사원 때와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이죠. 직원들을 돌볼 생각은 안하고 업무만 팝니다. 팀의 계획은 수립하지 않고, 자기에게 떨어진 일만 열심히 처리합니다. 또 다른 선택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입니다. 평직원이 아니니 업무에서 손을 놓고, 매니저 역할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 안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매니저는 이 둘 중 하나인 경우가 아닌가요? 여러분의 매니저의 매니저가 훌륭한 매니저가 아닌 경우에는, 여러분의 매니저가 매니저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테니, 그냥 그렇게 지내도록 놔둘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맡은 팀에 경력직 직원을 한명 뽑았습니다. 입사 며칠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마지막에 "제가 첫 출근하면 on board plan을 함께 보게 되는 건가요?"하고 물어보더군요. 입사 후 어떤 교육을 해 주고 어떤 업무부터 맡기겠다는 생각을 대충 하긴 했었는데, 문서로 작성해서 줘야할 의무가 생겼습니다. 그 직원은 출근 첫날 on board plan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모든 것을 이런식으로 매니저에게 지시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매니저가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도록 여러분이 조종(^^)할 수 있는 부분이 꽤 있을겁니다. 여러분이 매니저에게 기대하는 바를 매니저에게 잘 전달해 보세요. 누가 압니까, 여러분의 매니저가 뭘 해야 하는지 깨달을지도 몰라요. 혹시 깨닫지 못하더라도, 매니저에게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자꾸 생각하다보면 여러분이 매니저가 됐을 때 좋은 매니저가 될 확율이 더 높아질거에요.


by A-Typical | 2007/11/25 22:27 | 나름 진지한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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